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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평야마을의 볼거리 죽림사

    절의연혁

    지금의 죽림사는 신라시대 창건되었다가 1809년 己巳(순조9년)에 중창되었다.
    지금 이 죽림산은 신라시대 봉비산(鳳飛山)이라 하였으며 그 아래 한 구역에 빈 절터가 있으니 이것이 당시의 죽림사 자리다. 신라때 원앙 부인이 [수도(修道)]도를 닦던 도량이고, 그 아들 안락국이 대도를 깨달은 자리다. 이에 하늘이 이 자리를 비추니 운이 크게 통하여 이르렀다.법당은 자광전 (慈光殿)이라 하였다. 죽림사는 120년만인 1929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정묘년(1927년) 팔월에 주지 김노성 법명 용연 스님과 당시 면장 권전근이 뜻을 세워 신도 여섯이 불교 기성회를 조직하여 선남선녀 다수가 모금해서 초옥 다섯 칸을 사들이고, 불교 협회를 성립한 후에 당시 본사 기림사의 칠성각 재목을 양도받아 동해선 으로 운반한 후 신도들이 모금하여 법당을 중수하였다. 1929년 1월 12일 중수공사를 시작 그 해 6월 12일 상량(上梁)하였다. 화주, 용연 주지, 이상화 상량문(上梁文)] (당시 포항 최초의 사찰임.)이상화주지스님께서 다시 중수 불사 하였으나 포교당으로써 너무 협소하여 1980년 중창불사위원회를 조직하여 도로(道路)로 편입된 사답(寺畓)을 보상받아 대웅전과 유치원 건물을 새로 건립하였다.1996년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죽림사 사진

    절의활동

    죽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불국사 포항 포교당으로 전법도량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죽림사 사진

    신도회, 관음회, 지장회, 유마회 등의 신도 모임이 있고, 반야 합창단, 청년회, 학생회 등의 많은 활동이 활발하다. 청년회와 학생회는 1947년 창립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며, 불교 포교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포항 불교 사회교육원』 운영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도심 속에서 부처님 품안처럼 따뜻한 사회와 정토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포항불교 사회교육원의 주요 사업계획으로는 독거노인들과 영세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 무료진료소, 불우 청소년 및 소년, 소녀가장들을 위한 청소년 상담소, 노인들을 위한 의, 식, 주 해결, 진료당의 자원봉사 등을 할 예정이다.
    또 불교 교육시설로 현재 포항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어, 불교교리를 좀 더 쉽게 이해시키고, 자비사상으로 불국토의 이상을 건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포항 지역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며 교육과정은 주2회 화, 금 2년 과정으로 포교사를 양성하고 있다.사회, 문화 교육시설로 주1회 역사.문화교실을 운영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忠, 孝, 예절을 중심으로 우리의 전통사상을 고취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고 현장(유적지 등) 학습도 병행시켜 교육할 예정이다. 지역사회의 어려운 곳을 살필 수 있는 자원봉사단을 발족하여 독거노인세대와 소년, 소녀가장세대, 지체부자유세대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처럼 죽림사는 그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현대 불교 포교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죽림사 세존괘불탱
    지정번호 :
    보물 제1279호
    소 유 지 :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 산 1번지
    규  모 :
    전체크기(가로 263.5㎝, 세로 50㎝)
    화면크기(가로 243.3㎝, 세로 435㎝)
    재  료 :
    견본채색
    지정연월일 :
    1998년 6월 29일

    괘불은 부처를 내어 건다는 뜻이며 아울러 괘불재(掛佛齋)라하면 부처를 밖에 내어 걸고 야외에서 불교행사를 베품을 뜻한다. 야외에 내어 걸 수 있는 부처는 불화로 그려져 있어 야외법회를 할 수 있는 불화를 통칭 괘불이라 한다. 죽림사 괘불은 대중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청향각(淸香閣) 다락속의 괘불함에 들어있다. 이 괘불함(길이 229㎝, 너비 23㎝, 높이 21.5㎝)은 은행나무로 만들었는데 사방에 옻칠이 되어 있어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괘불은 화기가 있는 아래쪽부터 한지(韓紙)와 광목을 이용하여 둘둘 말아서 괘불함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전체 형식은 대좌, 불신, 광배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단 바탕에 채색되었으며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 단독상이다.

    좌상의 불신은 키(곡식을 까부르는 도구)모양의 광배를 배경으로 오색구름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형식의 광배는 우리나라 괘불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형식이다. 상호는 원만상이며 육계가 뾰족하고 머리의 중간에 가늘고 긴 중간계주가 뚜렷하다. 아래로 쭉 쳐진 귀는 얼굴에 비하여 아주 크고, 짧은 목과 어깨는 경직된 느낌이며 지나치게 단정한 자세로 당대에 제작된 불상들의 얼굴과 흡사하다. 왼손은 무릎위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오른쪽 손이 고려초기의 월출산 마애불처럼 유난히 길게 늘어져 있고 손이 지나치게 커서 비례가 잘 맞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며 그린 구도이다. 법의는 통견형인데 오른쪽은 팔굽까지 걸친 형식이다. 법의의 붉은 가사는 큼직큼직한 꽃무늬로 장식하여 간략하게 처리된 반면, 신광에 그린 호화스러운 금색 연속 보상화문은 고려불화를 연상케 하는 양식이다.

    하단 중앙에 가로 48㎝, 세로 15.5㎝ 크기의 화기란이 있는데, 「天啓三年壬戌十一月十七日… 庭中掛佛世尊幀…」의 기록이 있어 제작연대를 알 수 있다. 천계 3년은 1623년이지만 간지가 임술년으로 되어 있어 1622년 11월 27일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연호간지에 이어서 봉안처가 명기되어 있었으나 지운뒤 ‘竹林寺'라 다시 묵기하고 있다. 괘불의 명칭은 세존탱(世尊幀)이며 괘불을 그린 사람은 화사 수인(首印)과 신헌(信軒)이다. 이 괘불은 현재 알려져있는 우리나라 괘불 가운데 제작연대가 가장 빠른것으로 알려진만큼 크기와 형식에서 고식을 띠고 있으며, 작가(수인·신헌)와 명칭(세존탱)이 화기에 분명히 적히고, 독존좌불(獨尊坐佛)형식에 원만 단아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