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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단오 부채와 마지막 부채 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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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 2021-06-10 10:56:05 글쓴이 임성수 조회수 30


    오월 단오를 앞두고 여름 날씨이다. 해 마다 단오 때는 덥다 보니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조선 말기까지 부채는 개인 간의 선물뿐만 아니라 공조에서 단오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그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전라도와 경상도관찰사 및 절도사의 외관(外官)도 각기 그곳 특산품으로서 부채를 궁중에 진상하고, 또 조관(朝官)과 친지에게 선사하였다. 

     

    부채를 생산하는 각 고을의 수령들도 이와 같이 궁중에 진상하고 서울 각처에 선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이 부채 중에서도 전주와 남평군(나주시 남평읍)에서 만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쳐주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공조와 전라도·경상도 두 감영과 통제영(統制營)에서는 단오 때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였다. 그러면 조정에서는 이를 시종관(侍從官) 이상 세 영(營)에서 모두 예에 따라 차이가 있게 나누어주고, 부채를 얻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자기의 친척·친구·묘지기·소작인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경도잡지(京都雜志)’와 ‘‘국세시기’에도 나타나 있다. 

     

    단오진선(端午進扇)과 단오사선(端午賜扇)에 대하여서는 『조선왕조실록』에 그 기사가 수없이 나타나는데, 근대까지만 해도 나주는 부채 명산지였다. 나주 부채가 유명했던 것은 1920-1930년대 신문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1923년 10월 6일-10월 7일에 발행된 경성일보(京城日報)에는 “부채(扇子 및 団扇)는 주로 전라남도 담양, 나주, 전라북도 전주 남원의 각 군에서 생산되어 다이쇼(大正) 10년에는 약 54만개, 가격 13만 여 엔의 생산이 있었다.”라는 기사가 있다. 

     

    1931년 6월 3일자 동아일보에는 “전남 나주에는 세간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채, 발 등 견고 미려한 특산물이 있으나 현대적인 기계에 의한 산품이 아니요....”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1931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에는 “전남 나주의 특산물인 발, 부채, 대비 등은 전 조선 각지는 물론 외국에까지도 다수히 수출됨은 일반이 다 아는 바인데...”라는 기사가 실렸다.

     

    명성이 높았던 나주의 부채 전통은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1969년 문화공보부에서 발행한 ‘한국민속종합조사 보고서: 전라남도편’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는 “김홍식(金鴻植) 남 53세로 나주시 서내동 771번지 납작한 기와집 뒷결의 조그만 작업장에서 소동(小童)을 하나 데리고 일한다. 그는 이 지방 선방(扇房)의 최 연장자격인 모기남(牟基南, 80세, 생존)씨에게 일을 배웠고, 중년부터 생업으로 삼아 왔다“는 기록이 있다. 

     

    1969년에 발행된 ‘한국민속종합조사 보고서(1969년 발행)에 의하면 김홍식 장인의 부채 제작소는 향교 근처인 서내동 771번지이지만 이후 죽림동으로 이사를 해서 작업장으로 삼았으며, 1984년에 작고했다. 

    그러므로 김홍식 장인이  태극기 단선 등을 제작했던 구 역전통에 있는 죽림동 작업장은 나주 전통 부채를 생업으로 제작했던 마지막 제작소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현재, 이곳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나 나주 부채의 역사와 명성, 그 부채를 만들었던 장소라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만큼 활용여하에 따라 부활이 기대된다. 동시에 이번 단오를 계기로 나주 전통 부채를 되새기고, 전통과 마지막 부채 제작소의 활용 방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았으면 한다. 

    • 임성수 2021-06-10 10:56댓글 삭제

      오월 단오를 앞두고 여름 날씨이다. 해 마다 단오 때는 덥다 보니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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