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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슬기를 가꾸어가는
    남평 초등학교

    사진

    안녕하십니까?
    맑은 품성과 창의력을 지닌 21세기 인재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학교 홈페이지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남평초등학교는, 1906년 6월 15일 개교하여 2005학년도 19학급 530여 학생이 각자 자신의 소중한 꿈과 슬기를 가꾸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개성을 키우고,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봉사와 협동으로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알차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높은 학겨과 바른 인성을 지니고 자기 재주를 키워 나가는 어린이가 되도록 저를 비롯한 본교의 전교직원들이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 주시고 좋은 의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 우리학교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하며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여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평초등학교장 윤한옥

    기능

    농업기술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시험연구 및 신구술 개발 농촌개발과 생활개선에 관한 농업기술지도 농업인 영농과 생활기술에 관한 교육훈련

    교육목표(구현 중점)

    • 교화 : 셀비어(순결)
    • 교목 : 느티나무(강직)
    • 교훈 :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 교색 : 녹색

    학교 위치

    • 전남 나주시 남평읍 동사리 238번지

    연혁개요

    • 1906.6.15. 사립영흥학교로 개교
    • 1911.6.15. 남평공립보통학교로 개칭
    • 1980.3.05. 남평국민학교병설유치원 개원
    • 2004,3,01 제 32대 임복희 교장 취임
    • 2005.2.18. 제 92회 졸업(졸업생 수 47명, 총수 :11,989명)

    학교 현황 ()안은 분교임

    학교 현황 입니다.
    학년 1 2 3 4 5 6 특수학급 유치원
    학급수 3(1) 3 3(1) 3 3(1) 3 1 19(3) 2(1)
    학생수 49(2) 53(2) 4(1) 11 1 2(1) 1 1
    53 1 6(1) 15(2) 1 2(1) 1 1 1
    102(2) 101(4) 96(1) 93(4) 77(2) 79(3) 6 548(16) 35(6)

    교직원 현황

    교직원 입니다.
    구분 교장 교감 부장 교사 보건 유치원 교원보조 전산보조 행정 영양사 조리사 기능직 합계
    교사 교사 실장
    1 2 4(2) 1 2(1) 10(3)
    1 4(1) 11 1 2(1) 1 1 1 1 2 25(2)
    1 1 6(1) 15(2) 1 2(1) 1 1 1 1 1 4(1) 35(5)

    학교시설 현황

    교직원 입니다.
    교지 교실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 특별실
    정보통신실 실험실 준비실 인터넷실 컴퓨터실 도서실 음악실 급식실 체육관 무용실 어린이회의실 다목적실
    1 1 6(1) 15(2) 1 2(1) 1 1 1 2 1 1 1 1 1 1

    남도 교육문화의 발상지
    남평 중학교

    사진

    우리고장 나주시는 옛날부터 숭례·호국하는 의향의 시민성을 지녀 의병장 김천일 장군 등 의병활동이 활발하였고,
    또한 광주 인근으로서 광주학생 운동의 지원지이자 아울러 남도 교육문화의 발상지였다.

    특히 이 지역은 일제시대 일본 최하층 계급의 이민지로 일본농장들이 조성되었다 한다. RMeo 당시 남평에 2개의 보통학교가 있었는데 이곳이 일본인 전용학교인 남평북보통하교가 위치하였던 곳으로써 수령 250년생 보호수인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수량 100년 이상인 나무들이 우거져 운치가 좋아 이곳 주민들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활용하고 있다.
    또한 남평중학교 설립당시 지역유지인 정명섭씨를 비롯한 장한복씨 등이 학교 건물과 토지를 국가에 기부 채납하여 본교설립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남평중학교는 이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1967년에 개교하여 현재에 이르렀고 1999. 3. 1 일부터는 다도중학교가 우리학교 분교장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본관 건물은 1997-1998년 2년에 거쳐 개축된 것으로 역사가 깊은 나무들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교육의전당으로 면모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이 고장 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남평중학교장 안익현

    학교상징

    • 교화 : 셀비어(순결)
    • 교목 : 느티나무(강직)
    • 교훈 :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 교색 : 녹색

    교육목표(구현중점)

    • 애국인 : 주인의식을 길러 나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 민주인 :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여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 지성인 : 스스로 배우고 익혀 지혜롭게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
    • 건강인 : 기초체력을 연마하여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된다.
    • 과학인 : 합리적인 사고와 창의력을 길러 능력있는 사람이 된다.

    일취월장하는 자랑스러운 학교
    광남고등학교

    사진

    안녕하십니까?

    “만물이 생동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본교는 교사와 학생이 혼연일체 되어 올바르고 참다운 인성을 갖추고 자기주도적 학습태도로 매진하여 일취월장하는 자랑스러운 학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세계화, 정보화, 다원화 시대로 대변되는 21C가 요구하는 인재 육성을 위해 최적의 환경에서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후목부장(朽木扮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벽은 칠할 수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 굳은 신념과 의지를 겸비한 우리 광남인은 오늘도 소중한 꿈들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미래를 꿈꾸는 자의 몫이고 우리 광남인이 이끌어 갈 것입니다.

    맞이하는 시간마다 행복과 건강이 함꼐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광남고등학교장 이영수

    학교 연혁

    • 1977. 06. 20 ... 학교법인 홍복학원 설립인가
    • 1984. 11. 27 ... 광남고등학교 6학급(18학급)설립 인가
    • 1985. 03. 01 ... 초대 서복영 교장 취임
    • 1985. 03. 13 ... 광남고등학교 개교
    • 1985. 12. 31 ... 학급 증설 10학급(30학급)
    • 1996. 02. 01 ... 학교법인 하남학원 전입
    • 1999. 03. 01 ... 현 제 3대 이영수 교장 취임
    • 2005. 02.11 ... 제 18회 졸업식 거행(36명)
    • 졸업생 누개 - 3,642명

    교육목표(구현중점)

    • 자기 분수를 알고 애국 애족하는 사람 (애국인)
    • 옳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예절인)
    • 성실한 학습 과정을 통하여 실력을 갖춘 사람 (실력인)
    • 심신을 단련하여 굳센 체력을 지닌 건강한 사람 (건강인)
    • 과학적인 사고력을 길러 생산적인 기능을 갖춘 사람 (탐구인)

    학교상징

    • 교화 : 철쭉 : 희망, 성실, 창조
    • 교목 : 향나무 : 절개, 기상, 안내
    • 교훈 : 배운대로 행하자
    • 교색 : 녹색
    • 교가 : 사진저장해뒀음

    철학과 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학문의 전당학교
    카톨릭대학교

    사진

    우리 광주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대 학교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방인 사제이시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1821~1846)를 주보성인으로 하여 1962년에 개교한 대학으로서 “진리에 봉사” (SERVITIUM VERITATIS)라는 교시 아래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는 4년간의 학부과정과 3년간의 대학원과정을 토하여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 양성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교입니다.

    또한 시대와 사회의 요망에 귀기울이며 지역사회를 선도하고 철학과 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학문의 전당으로서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지면서 2003년도부터 평신도에게도 관심이 있는 강의를 청강할 수 있또록 기회를 제공하는 열린 대학입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마르 16.1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 대학은 진리 탐구와 학습 그리고 봉사를 통해 인간세계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2고린2,14)를 풍기는 공동체로서 더욱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많은 성원과 기도 가운데 항상 지켜봐 주십시오.

    우리 대학교 홈페이지를 찾아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재삼 감사드리고, 여러분께서 이 홈페이지를 통해 다소나마 우리대학교와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꼐 하기를 기원하면서,

    카톨릭대학총장 이영헌(마리오)신부

    교시

    • Servitium Veritatis 진리에 봉사

    교육이념

    • 광주가톨릭대학교는 사제직을 지망하는 신학새으로 하여금 계시 진리에 입각하여 올바른 시노간, 세계관, 인간관을 정립할 수 있는 이론적 지식과 교회전례와 대인봉사에 필요한 실천직 지식을 연마케 하고, 사제직무 수행에 적합한 그리스도교적인 산망애의 덕성을 길러 조국과 인류의 복음화에 공헌할 수 있는 봉사자가 되도록 양성한다.

    CI

    CI이미지 광주가톨릭대학교의 교표는 악에 대항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방패를 상징한다. 중앙의 십자가는 세상구원을
    이룩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홍생 바탕은 주님과 세상을 위해
    흘린 순교자들의 피를, 배는 세상을 항해하는 교회와 본교 주보
    성인 안드레아 신부의 복음 전파 항해를, 팔마가지는
    순교자들의 월계관을 상징한다.
    이런 상징은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를
    드러내고 본교 공동체의 지향 점을 가리킨다.

    설립자 헨리대주교 약력

    헨리대주교 사진

    • 1909년 7월 11일 미국 미네소타주 노스필드 출생
    • 1932 골롬반 신학대학 졸업
    • 1932.12.21. 사제서품
    • 1933.4 전남 노안천주교회 보좌신부 부임
    • 1935.4 전남 나주천주교회 주임신부 부임
    • 1950.8 천주교 광주교구 주교 서리 임명
    • 1954.12.3. 천주교 광주교구장 임명
    • 1957.3.7. 천주교 광주교구장 주교 착좌
    • 1962.4.24. 천주교 광주교구 대주교 임명
    • 1971.7.14.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임명
    • 1976.4.1. 선종

    약사

    순교성인들(103위)을 위시하여 수많은 순교자들을 가진 한국천주교회는 선교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순교자들의 피가 그리스도교의 씨앗”이라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재확인시켜주고, 또한 성직자 양성이 가장 요긴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도 말해준다.

    골롬반회 소속 미국인 현 부(Rev. Harold. Henry)는 1933년 10월 광주에 도착하여 신앙의 불모지 전남지역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복음 선포에 전심하였고, 1950년 광주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어, 사목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방인 사제의 양성이 시급함을 인식했던 것이다.

    서울의 가톨릭대학(당시 성신대학)만으로는 성직자의 부족을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감지한 현 주교는 광주에도 또 하나의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의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국(미국) 방문을 자주했었다.

    마침내 광주 쌍촌동 305번지에 9만여 평의 학교 부지를 확보하고 연평견 2,500여 평의 학교 시설을 갖추어, 1962년 3월 7일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성인을 주보로 못니 대건신학교가 설립되었으니, 이것이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이다.

    건축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해 1631년 3월에는 이미 신학생 18명이 당시 광주시 금남로 4가 22번지 소재의 한 낡은 목조건물에 대건신학당이란 현판 아래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현 주교는 대학의 운영을 미국 예수회 위스컨신 관구에 위촉하였고, 우선 진성만(베드로) 신부로 하여금 신학생들의 영성지도와 라틴어 교육을 담당케 하였다.

    1962년도는 두가지 큰 경사가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3월 7일 대건신학교의 설립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3월 15일 광주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설립자 현 주교가 대주교로 수품된 것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지역 안배에 따라 광주와 대구관구 소속 신학생들과 예수회, 살레시오회, 프란치스코회 소속 신학색들은 대건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되어, 철학과 21명, 라틴어반 22명이 입학했고, 초대 교장으로는 예수회 소속 미국인 박후버(Rev. Andrew H. Bachhuber S.J)신부가 취임하였다.

    학교건물 중앙에 위치한 자습실은 원래 공동기숙사였는데 설립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헨리관(Henry Hall)이라고 명명했고, 동쪽 기숙사 건물을 브레디관(Brady Hall)이라 칭하여 미국에서 건축 기금 모금을 도와주었던 브레디 주교를 기념하며, 본관 현관 바닥에 새겨진 브렌난 주교 기념 신학교(Brennan Memorial Seminary)라는 글귀는 현 주교의 선임 교구장 안주교(Msgr. Patrick Brennan)를 기념한다. 안주교는 광주교구장 재직시 6. 25때 납북되어 끌려간 후 소식이 없었다.

    1964년 7월 학교법인 대건학당 설립인가를 신청하여 동년 10월 26일 사립학교법 및 동법 시행령 개정에 의해서 새로운 학교법인 대건학당이 설립 인가되자 초대 이사장으로 설립자인 현 대주교가 취임했다.

    1965년 1월 13일부터 대건신학교는 대건신학대학으로 설립 변경이 인가되어 사제직 서품까지의 7개년 과정 중 4개년만이 정원 160명의 단과대학으로 법적 인정을 받게 되었고, 교장 박후버 신부는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1966년 10월 제 2대 학장으로 예수회 소속 미국인 길로렌 신부(Rev. Kennenth E. Killoren, S.J)가 취임하였고, 동년 11월에는 강의실 81평을 증축하였다.

    1968년 2월 10일 제 3대 학장으로 예수회 소속 미국인 도일 신부(Rev. Terence W. Doryhie, S.j)가 취임하였다. 동년 11월에는 전망편집부가 발족되어 신학전망이라는 대학 학술지를 계간별로 발간하기 시작했다. 본 학술지는 세계적인 신학자들의 글을 번역 소개함으로써 신학도들로 하여금 철학과 신학의 동향을 익히게 하고 본교 교수들의 연구 논문도 발표케 하고 있다.

    1969년 11월 28일 대학운영권이 예수회로부터 광주관구와 대구관구 주교단으로 이양되어 부산교구 출신 이 경우 신부가 제 4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때부터 방인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교수단이 형성되었고 한국교회가 요구하는 사제 육성에 걸맞게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1971년에는 성당과 강당이 준공되었고, 1975년에는 도서관과 기숙사의 증축과 사제관 신축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시설도 확장되었다.

    1972년 2월에는 예비과 과장(라틴어)이 폐지되었고, 1973년 대학원 설립인가는 사제 양성에 필요한 교육기간 6년 조정과 때를 같이하여 실현되었고 7년전에서 6년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6년반을 수학하였다.

    1980년 졸업 정원이 40명에서 70명으로 증원, 재학생 규모가 180여명에서 300명대로 늘어났다.

    1974년에는 전 이사장 고 항공렬 대주교 1주기에 한 대주교의 유물을 매각하여 장학회가 발족되었고, 현재 다른 4종의 장학기금의 기초가 되었으며,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신학생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다.

    1976년 2월에는 6년 과정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1978년도에는 하계 신학강좌를 개설해 평신도와 수도자들에게도 신학연구의 기회를 주었고, 1983년부터는 대건교리신학원으로 체제를 정비하여 2년 코스 12시간씩 교육을 1997년도까지 실시하였다. 1982년에는 대구교구에도 선목신학대학이 개교됨에 따라 부산교구를 제외한 대구관구 소속 신학생들이 대구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광주관구와 춘천, 원주, 부산교구 소속 신학생들 및 수도회(살레시오, 예수고난회) 소속 신학생들은 본 대학에 남게 되었으나 신학생수는 전체적으로 열세였다.

    1982년 3월 7일 본 대학 주보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을정문 좌측에 세워 제막식을 갖고 대학 설립 20주년 행사를 가졌었다.

    1984년 5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본교를 방문하셨다.

    1985년 3월 1일부로 본 대학의 이름은 ‘광주가톨릭대학’으로 개명되었다.

    1987년 5월 4 ~ 6일 본 대학 설립 ㅣ25주년을 맞아 수도자들과 평신도들 그리고 선배동문들로부터 바람직한 사제상과 신학교 생활에 대해 강연을 듣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1991년 부산 신학교가 설립됨으로써 본 대학 지원자가 광주관구와 살레시오, 예수고난회 소속 신학생으로 축소되었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1994년 3월 1일부로 학교 명칭이 광주가톨릭대학교로 변경되었고, 당시 학장 김민수 신부가 초대총장으로 추대되었다.

    본 대학교의 장소가 광주시 발전으로 인해 중심지화 되어가고 학교시설의 노후화 교육적, 경제적 이유로 1993년부터 대학 이설 계획을 추진하여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음 남석리 170번지에 대지 106,588평 건물 21개동, 연건평 9,197평으로 하여 1995년 10월 18일 새 교정 신축기공식을 가졌다.

    이사주교들과 교수들이 1990년붜 신학교의 교육과정을 다시 7년제로 해야 한다는 뜻을 모았기에 6년제 교과과정을 7년제에 맞도록 연구를 시작했고(1976년부터 6년제로 축소되었음), 1997년 7년제가 적용되도록 했다.

    1998년 1월 16일부터 광주시 서구 쌍촌동에 전남 나주시 남평읍 남석리 새교정으로 이사를 시작해 1998년 2월 말부터는 새로운 교정에서 첫 학기를 시작했고 영성관과 교구별 생활관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 교정은 광주가톨릭대학교 부속 평생교육원(1999. 4. 9) 시설로 활용하게 되었다. 동년 3월 1일부터 신학연구소 규정안(97년 2월에 설립되어 규정안을 만들었음)이 시행되었다.

    2022년 9월 2일 3대 총장 범선배 신부의 후임으로 광주교구 소속 이영현 교수신부가 제 4대 총장에 취임하였고, 그동안 영성의 해 운영, 영성관 및 생활관 운영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새 규정들을 정비했으며, 한편 2001년에 발표된 한국 사제 양성 지침에 ᄄᆞ라 7년제 교과목을 새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신학생들의 복지에 도움을 주고자 학생관 3층을 개조한 만남의 방, 노래방, 헬스장, 당구장등의 시설에 대한 축복식이 동년 9월 1일에 있었다.

    관구 주교 이사회(2003. 1. 9)에서는 2003년 1학기부터 영성관 체제를 1년으로 결정하여 영성관에는 1학년 신학생만 기거하게 하였고(1998년부터 영성관에서 1,2학년 신입생들이 기거했음), 철학이나 신학을 심도있게 공부하고 싶은 수도자와 평신도들도 신학생들과 함께 청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였다.(공개강좌 실시)

    2003년 7월에는 6년제에서 7년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6년반과정 학생이 서품되었다.

    2003 9월 26~27일에 본교출신주 방그라데시 교황대사 장인남 바오로 대주교(2004. 1. 6성성)는 인사차 본교를 방문하였다.

    2003년 7월 16일 ~ 11월 25일 도서관 앞 광장과 옥상 및 외벽공사, 생활관과 영성관 옥상공사, 베리따스 광장 스텐드 보수공사를 하였고, 2003년 11월 21일 ~ 2004년 1월 20일 정문개보수 공사를 하였다. 11월 7일에는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제 8회 학술 심포지움을 “생태계의 보존과 개발”이라는 주제로 본교 신학연구소의 주관으로 개최하였다. (1977. 4. 28에 제 7회 학술 심포지움이 개최되었음)

    2004년 1월 9일 관구주교이사회는 “제 2영성의해 지침 및 운영계획”과 “제 2영성관 생활내규”를 인준하여 2004년도 1학기부터 제 2영성의 해(연구1년 교구 신학생)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11월 5일에는 2ㅔ 9회 학술 심포지움을 “호남지역 초기 천주교 공동체의 위상”이라는 주제로 개최하였다.

    2005년 2월 현재 본교 출신 사제가 768명에 이른다.